차이에서 배워라

제목 번역이 너무 납득불가한데(개즈비가 한 말이긴 하지만 이 책이 하려던 얘기의 중심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 원제는 Ten Steps to Nanette이고 나네트가 나오기까지 본인 인생의 흐름을 엮은 자서전(이라고 하기엔 너무 잘 쓴 글로 느껴짐 보통 자서전을 생각할 때는 그렇게까지 잘 쓴 글을 떠올리지 않기에). 그 안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서 동성애 혐오가 가장 심했던 테즈메이니아 시골이 있고, 자폐가 있고, 몸이 있고, 강간이 있고, 당연히 예술사와 코미디가 있다. 특이하게도 에필로그와 프롤로그가 뒤집힌 순서의 구성을 따라서 그 모든 것들을 훑고 다시 원점 같은 나네트로, 부서진 스스로를 다시 지어올린 여성보다 더 강한 존재는 없다는 그 문장으로 돌아오게 된다.

🔖 예술은 복원이다. 예술은 삶이 가한 고통과 상처를 수선해주고,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해체되었던 무언가를 온전한 것으로 만들어낸다. ㅡ루이즈 부르주아

🔖 나에게는 풍부한 내면세계가 있었고, 할 수 있을 때마다 나는 내면을 헤엄치고 다녔다. 분명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풍부한 내면세계가 있었을 테지만 나의 세계와 그들의 세계를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도 다른 애들처럼 웃고 인사하고 해야 할 건 하고 있었지만 언제나 나만 나머지 세계와 동떨어진 이상한 아이처럼 느껴졌다. 그때 내가 보지 않은 건(보지 못한 건) 다른 사람들은 서로를 잇는 통로를 직감적으로 찾아낸다는 사실이었다.

🔖 그러던 어느날 그 책을 만났다. 현대미술에 관한 손바닥만 한 책이었다. 그때도 책을 신중히 고르는 척하면서 책장을 훑어보다가 표지가 마음에 드는 아무 책이나 꺼냈다. 당시에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지금은 아주 당당하게 인정하려고 한다. 나는 표지로 책을 판단한다. 오늘날까지도 나는 사진이나 그림이 들어간 책이 좋다. 그때 난이 작은 미술사 책이 나에게 불러일으킨 기묘한 감동과 강렬한 인상이 이상했다. 작품 해설에 들어 있는 용어들은 당연히 이해 불가였다. '병치’라든가 '곡선적'이라든가 '강요된 관점’ 등이 뭇은 뜻인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책을 넘기는 순간부터 완전히 몰입했다. 그 세계 안에서 자아 감각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부분적으로 호기심이 커진 이유는 이 책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헐벗은 여성 신체 때문이라 확신하지만 의식적인 수준에서 나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에도 매혹되었다고 맹세할 수 있다. (…) 나에게 직접 말을 건 것은 예술 자체가 아니었다. 나는 이미지와 글의 관계에 매료된 것 같았다.

(…) 나에게도 사람과 세상을 열심히 관찰하여 나름대로의 맥락을 추론해내는 능력이 있기는 했다. 그래도 잃어버린 퍼즐 한조각이 있는 것 같았고, 그걸 꼭 찾고 싶었다. 책은 만물박사 아닌가. 잃어버린 조각이 책 어딘가에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부터 도서관에 몇시간씩 눌러앉아 필요한 지식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더는 형광등 불빛도 거슬리지 않았다. 친구 문제도, 내 외모도 고민하지 않았으며 내가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고민까지 멈추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하는 척하라는 말이 있지만 난 책벌레인 척하다가 진짜 책벌레가 되고 말았다. 천국에 온 줄 알았다. 1993년 이후로 경험한, 환희와 가장 근접한 감정이었다.

🔖 당시에는 아무데서나 과격한 동성애 혐오 표현이 후렴구처럼 러 나왔다. 나는 이 말들을 수집해서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떠올리는 걸 좋아했다. 물론 그것들을 소리 내어 말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머릿속으로 굴려보면서 사람들이 갖는 중오의 분쟁을 궁금해하고 그들을 감싸고 있는 공포의 실마리를 풀어보려고 했다. 마치 매혹되기라도 한 양 자주 생각했고, 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니 단순히 호기심이라고 믿었다. 그 용어들을 몇년 동안 곰곰이 생각하고 곱씹고 난 뒤에야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와 무관한 것 같은 말들을 수집했던 이유가 그것들이 나에 관련된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점은 그보다 몇년이 더 흘러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아마 이해는 하지 못했을지언정 그때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 엄마는 왜 그렇게 의사를 신뢰하지 않고 아프다는 말에 의심부터 하거나 화를 냈을까? 이에 관한 엄마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고 내가 엄마를 대신해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정도만 이야기하고 싶은데,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헤치고 가야 한 인생사가 많았으며 나는 당시로서는 엄마도 최선을 다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 엄마의 최선이 충분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그래도 최선은 최선이고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건 그뿐일 때도 있다.

🔖 당시에는 그게 옳은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병원에 누워 인간의 필연적 운명을 맞이하는 할머니를 목격하면서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을 공유하지 않은 것이 어쩌면 실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오르락내리락하는 할머니 가슴을 보며 실수든 아니든 내가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도 다 수프의 일부야. 지금 양파를 건져내기엔 너무 늦었지.***

(…) 그때 갑자기, 나 자신 또한 벽장 속 삶에 내재된 고통을 통찰할 줄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사실 수치심 때문에 할머니에게 커밍아웃하지 않고 있었다. 할머니가 게이 아들에게 쏟았던 애정을 알았다면 할머니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기회를 결코 저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술잔을 내려놓고 내가 얼마나 많은 양파를 다루어야 했는지, 그 많은 양파 중 얼마나 많은 양파가 내 수프의 일부가 되지 못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양파들은 아직 너무 날것이었으며 지독하게 매웠다. 그 생각과 함께 트라우마가 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나에게 가해진 그 폭력, 학대, 강간..... 그리고 뒤죽박죽 섞인 이 어두운 기억들 속에서 아직도 내면화한 수치심의 덩굴에 꽁꽁 묶여 있는 내가 보였다.

(…) 공항에서 스미스턴 출신의 친숙하고도 낯선 사람을 보니 이상하게 마음이 불안해졌는데 처음에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남자는 어쩌면 내가 어릴 때 무서워했을 만한 사람이었고 그 시기 나를 구석에서 꼼짝 못하게 만든 사람들의 특징을 대표하기도 했다. 나는 10년 동안 무대에 서고 자신감을 쌓은 뒤에야 마침내 세상에서 정당한 내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 편안해졌다. 내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시화되거나 존경을 받거나 심지어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더이상 내가 보통 사람보다 못난 사람이니 구석에 찌그러져 있어야 한다는 가정 아래 살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아마도 더이상 수치심에 지배되진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스미스턴 출신의 친숙한 낯선 사람이 마치 땅이 자기를 삼켜주길 바라는 듯 발밑을 내려다보는 모습에서 예전의 내가 생각났다. 그가 몸을 끄고 어깨를 앞으로 굽혔다 뒤했다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건 내가 그랬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심드렁하게 말했고 각각의 단어를 분명히 발음하지 않았으며 문장 끝을 흐렸다. 나도 그랬다. 이 남자가 깊은 수치심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연결하고 나자 동성혼을 국민투표에 올리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지 이해하게 되있다. 나는 다시 논쟁의 여지가 있는 시민으로 내몰렸고 어쩔 수 없이 스미스턴 출신의 친숙한 낮선 사람 같은 인류와는 대립적인 장소에 서 있게 될 것이 뻔했다. 하지 만 우리 둘 다 세상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고, 우리 둘 다 이해하지 못하는 과정의 총격전 속에 갇혀 있었다. 우리 둘의 차이점은 그래도 그는 한때 세상을 약속받은 적이 있었고 나는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언더도그(underdog)였 다면 나는 그냥 도그(dog)였다.